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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깨찰빵 (봄여름)

타입: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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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에 대한 상담을 이어 나가는 게 그분을 위해 최선일까요? 나름대로 좋은 관계를 쌓아 왔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여러모로 마음에 걸리긴 합니다. 애초에 상담 주제가 그거였거든요. 나는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른가. 그리고 주제는 아니었습니다만,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걸 본인 단점으로 생각하는 분이시기도 했고요. 일단 고칠 생각이 없다고 말씀은 하셨다지만 언급을 했다는 건 인지는 하고 있으시다는 거고. 모난 돌이라는 게 아까 말한 주제와 사실 그렇게 동떨어진 것도 아니었죠. 그래서 잘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일단 그 사람에 대해 설명해 볼까 싶습니다. 앨빈이라는 사람은 사실 완전히 자발적으로 의뢰된 내담자는 아니었습니다. 처음 제가 있는 기관으로 연계되었을 때, 저는 꽤 낯선 부서의 명칭과 함께 상담 의뢰를 부탁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었습니다. 연락을 하는 사람은 꽤 직설적인 어조여서 아마 상급자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리라고 짐작해 볼 수 있었어요.

 

연구기관 MTI. 확인했습니다. 다만 의뢰 대상자께서 성인이실 뿐만 아니라 기관 내 상담사로부터 의뢰된 건 아니셔서, 상담에 동의하는 절차는 본인이 기관에 내방하여 진행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괜찮습니까?”

, 분명 성실하게 갈 겁니다.”

 

전화를 준 사람은 분명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보통 대학생이라거나 심신이 미약한 사람들의 경우 부모나 여타 보호자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내담자 대신 의뢰하는 때도 많아서, 처음에는 의존적인 사람 혹은 병세가 아주 심각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말이 좀 그렇긴 하지만, 아시잖습니까? 자신이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줄도 모르고 부모님이나 다른 '윗사람'들이 너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라고 말을 한 뒤에야 병원에 방문하는 자아가 약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요. 그런 사람들의 경우에는 순종적이지만 스스로 기관을 찾아오는 대신 망가져 버리기를 택하곤 하죠.

 

앨빈 씨의 첫 방문은 제가 없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저 대신 접수 면접을 진행한 인테이커는 대략적으로 그의 인상을 기술해 놓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불온하고 흉흉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라고요. 실제로 며칠 뒤 제가 블레이크 씨를 만나 뵈었을 때 받은 인상도 비슷했습니다. 의복은 온통 새까맣고, 피부는 검은 머리와는 대조적으로 창백해서 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덩치가 그렇게까지 큰 편은 아니라서 아주 위협적이지는 않았어요.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그래요, 부기맨, 아시나요? 호리호리하고 사지는 길며 벽장 속에 숨어 있다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크리피 파스타의 흔한 소재 말이죠. 건달보다는 괴담에 더 가까웠던 듯도 싶습니다.

 

그는 꼭 그림자 속에서 갓 걸어 나온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일단 상담실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그랬어요. 전반적으로 차림은 깔끔한 편이었습니다. 결벽적일 정도였다고 할까요? 보통 정신 건강이 불안정한 사람들은 비위생적인 차림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도 자기를 돌보지 못하는 수준은 아니겠거니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는요. 저는 그에게 인사를 했고, 앨빈 씨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상담실 귀퉁이에 놓인 카우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는데, 시선은 금방 거두어졌습니다. 상담실 구조 때문에 내담자들이 하는 흔한 오해가 있어서 저는 바로 설명했지요.

 

오늘 누워서 상담하지는 않을 거예요. 정신분석적인 상담을 할 때 보통 카우치를 쓰는데, 오늘은 그런 기법을 쓰기보다는 어쩌다가 방문하게 되셨는지부터 여쭤볼 계획이거든요.”

 

그때까지 앨빈 씨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둥근 테이블 맞은편, 안락의자에 앉은 그는 서 있을 때보다 한층 위축되어 보였습니다. 시선은 주변을 불안하게 배회했고 어깨는 움츠러든 채였지요. 몸은 앞으로 기울어지지도, 뒤로 젖혀지지도 않아 주변이 그리 편하게 느껴지는 상황도, 저에게 접근하는 것이 손쉬운 유형도 아니리라는 점을 암시했습니다. 짧은 침묵 끝에 앨빈이 말했습니다.

 

무서워.”

어떤 게 무서운가요?”

잘 모르겠다.”

 

그게 앨빈 블레이크와 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사실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쉬운 내담자는 아니었습니다. 내담자를 두고 쉽다 어렵다 같은 불평을 하는 게 아주 적절하지는 않은 줄 알지만, 그래도 그랬어요. 분명 성실했고 묻는 말에도 꼬박꼬박 대답했습니다. 그건 그가 가진 장점이자 자원이었고 상담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자아라는 게 너무 희박했다는 점이었어요.

자아라든가, 자존감이라든가, 자신감 혹은 자존심 같은 표현을 사람들은 흔히들 섞어 쓰지요. 차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요. 하지만 제가 말하는 자아의 희박성이라는 것은 딱, 프로이트적 이론에서 논하는 '에고'의 부족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자기 자신이 없었습니다. 본인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뚜렷한 감각, 다른 사람을 통해 구현되지 않는 자신의 고유성, 타인과 분리된 자신의 영혼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략 읽히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가해진 손상을 치유하려 드는 부류는 아니었습니다. 첫 회기가 끝날 무렵 저는 그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어떤 사건 때문에 찾아왔는지를 대략적으로 들었습니다. 위험한 사건을 다루는 요원으로 일하는 중이더군요. 그러한 특성이 생존 본능의 부재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와 저의 첫 면담은 대략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지금 이 상담실에서도 무섭고 두려운 느낌이 드나요?”

어느 정도는 여전하군.”

어떤 것들이?”

모든 것들이. 견딜 수가 없어.”

 

그 말을 하는 그는 위축되어 보였습니다만, 말투는 단조로웠습니다. 그냥 흘려듣는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대본을 읊는 인물처럼 보였을 법한 투였습니다. 저는 통상적이고 전형적인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상담까지 오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혹시 말씀 나누시는 데 무리는 없으신가요? 너무 힘들다든가.”

상관없다. 본 프로그램 참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실 처음 연락해 주신 분이 다른 분이셔서 억지로 오신 건 아닐까 걱정했었어요. 아무래도 억지로 붙잡아 놓고 싫은 소리를 하게 만드는 건 저로서도 마음이 좋지 않고, 그래서요.”

 

그리고 얼마간의 침묵. 운을 떼는 앨빈.

 

최근 사건이 있었어.”

 

대개 앨빈은 흡사 고해성사와도 같이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얘기하는 내내 그는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특성입니다만 그의 경직성에는 특징적인 구석이 있었습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꼭 사는 곳이 바뀌어 겁을 집어먹은 길짐승 같았다고 할까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괴로워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만, 제가 재촉하거나 추론해서 말을 꺼내지 않아도 그는 언어를 정리했습니다. 그는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진정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를 상담실까지 보낸 타인을 위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요.

 

앨빈이 한 이야기라는 것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그는 정부 기관 소속 이능력자로, 한동안 다른 기관에서 특히 어려운 임무를 위해 활동하다가 현재의 기관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른 기관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그가 거의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파고들어서 그를 괴롭히는 것은 준비되지 않은 영혼을 인두로 지지는 꼴이 되었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말하지 않은 공백이 있다는 것을 저도, 그도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후 앨빈은 현재의 기관에 소속된 이후 활동을 이어 나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 30년 정도 전이던가요, 처음 초월 능력자 분들이 사회에 나타나게 된 게.”

대체로 그렇지.”

 

말이 나온 김에 궁금하여 물어보았는데, 세상에 후천적 이능력 발현자는 한 명 정도를 제외하고 존재하지 않는다더군요. 그 사람을 앨빈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설명이 상세했거든요. 그러나 그는 제가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해당 인물에 대해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어떤 폭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이능력 개화가 발생한 사람인 것 같다, 라고 말을 했는데 일단 능력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다는 투였습니다.

 

그래도 잘 알고 계시네요. 친하신가요?”

아마도 아니.”

세상에 하나뿐인 분이시면 뉴스에 나왔을 법도 한데,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제가 이능력 보유자 분들에 대한 뉴스를 앞으로는 더 성실하게 봐야 할까요?”

뉴스를 봐도 나오진 않았을 거다.”

, 그래요?”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게 공공연하게 밝혀지면 실험실로 끌려가서 온갖 인체 실험의 대상이 될 테니까.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숨겨야 했을 거다.”

 

분명 그 후천적 능력자의 문제가 그의 개인적인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만, 그 순간에는 들여다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이능력을 보유한 사람이라는 게 그냥 평범한 보통의 인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였다면 앨빈 씨에게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이능력의 문제는 그의 과거를, 현재의 업무를, 미래를, 요약하자면 거의 인생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정신 건강에 그렇게 도움이 되는 편도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위기 상황에서 동료들을 구하고 있었고. 구하는 데는 성공하셨지만 그 위기 상황의 특성 문제로 과거사와 PTSD에 대해 알렉스 웨스트우드라는 상사 분이 알아채게 되셔서 상담을 권유받았다는 거죠.”

그래.”

혹시 그때 다들 본 과거사가 뭔지 여쭤도 될까요?”

바늘과 병실 침대가 싫다.”

 

딱 들어도 말이지요. 바늘과 병실 침대가 싫다. 후천적 이능력자의 정체가 밝혀지면 비인도적인 실험을 당할 것이다. 그런 식의 기술이 있다는 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후천적 이능력자가 강제로 실험을 당하는 것과 관련한 개인의 문제가 있으리라고 추측되지 않는지요? 상담이라는 건 아무래도 기술된 내용을 토대로 단서를 모아서 문제의 근원을 추리하는 직업이니까요. 제 추론은 그러했습니다.

 

, 그러고 보면 앨빈이 보이는 다른 특이사항도 몇 가지 더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자기 이름을 부를 때 그렇게 잘 반응하지 않았어요. 꼭 자신의 진짜 이름이 아니기라도 한 것처럼요. 반면 알렉스라는 이름을 말할 때면 생각보다 자주 경직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의 상사가 자신을 '알렉스'라는 이름이 아닌 웨스트우드라는 성으로 부르라고 권유해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름을 들으실 때마다 답변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시네요. 혹시 상사분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라거나, 다른 이유가 있나요?”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과 이름이 같아.”

혹시 어떤 분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말했지만 상담의 초반 회기까지 그는 정말로 성실했습니다. 묻는 말에도 쉽게 대답했어요. 4회기가 넘어갈 무렵부터는 답변 전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불성실해졌단 건 아니에요. 일단 바로 대답하려고 노력은 하는 것 같았습니다. 시킨 일에는 제대로 임할 수밖에 없다, 상담사의 상담에도 누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묻어날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도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말을 하기가 도통 어려운 상처 같은 것들을 아무렇잖은 척 끄집어 내려다가도 오래 머뭇거리게 되지요.

 

옛날에 알고 지내던 알렉스를 언급할 때 앨빈이 유독 그러했습니다. 듣기로는 이전 기관 소속의 생도 시절에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더군요. 자신보다 실력도 훨씬 뛰어나고, 더 어린 자신도 다정하게 챙겨 줘서 인정받고 싶은 형이라는 느낌을 주는 인물이었다고 했습니다. 성공해야 했다, , 그는 말했습니다. 알렉스의 앞에서는, 분명 상대가 자신의 미숙함을 책망하거나 몰아붙이지 않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뛰어난 녀석이 되고 싶었다고.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고. 동경했노라고.

 

웨스트우드라는 상사분과 비슷한 부분이 있나요?”

이름 빼고는 없다.”

그런가요. 그래도 연상이 되신다는 거군요.”

그러면 안 되는 건가?”

아뇨,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는 그 이야기를 꺼낸 여섯 번째 회기에서 아주 느릿하게 기억을 긁어냈습니다. 꼭 다 타 버린 냄비 밑바닥에서 기억을 강제로 뜯어내는 것처럼 보였어요. 앨빈은 꼭 꿈을 꾸는 사람 같았고, 이 세계에 발을 딛고 싶지 않은 인물처럼 보였습니다. 훈련을 받던 당시의 알렉스는 앨빈에게 언젠가 멋진 이름을 찾아 주겠다고 말했다더군요. 그와 함께 한 활동들에 대해서도 말해 보게 하였는데, 일상적인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훈련이라든가 설명만을 들어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활동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럼에도 앨빈은 알렉스를 아주 좋은 인물로, 동시에 고통스럽게 회고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드문드문 끊기는 그의 목소리를, 음울하고 미세하게 일그러진 눈매를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대화를 마친 후 다음 회기에서 기억나는 사항을 더 다루어 보자고 하던 중에 앨빈이 운을 뗐습니다.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저는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상담에 오는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지요. 병세가 있거나 어딘가 망가졌거나 하니까, 보통의 범주보다 더 고통스러워 상담이라는 것을 받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나 그것을 앨빈 또한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아마도 그가 이야기하는 것이 직전까지 저와 나눈 과거의 경험 등과는 다른 무언가이리라고 짐작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죠. 그래도 방금 그렇게 말씀하신 걸 보면 취향이나 취미 같은 소소한 영역 이상의 무언가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직업적으로 뒤처지고 있다고 느낀 적은 없다. 특히 전에 소속되어 있던 기관에서는 다른 녀석들이 제대로 손대지 못하는 업무도 혼자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있었어. 하지만 나는 달라.”

다르다?”

보통의 사람들이 지향하는 미래와 동경하는 인간상과 나의 성취가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끼시나요?”

켄드릭 때도.”

켄드릭?”

블랭크라는 기관에서 교육받던 때 만났는데, 우두머리 기질이 있는 놈이었어. 그렇게 신경을 쓸 만한 녀석은 아녀서 머리 하나쯤 커서 눈에 띈다, 이상으로는 고려하고 있지 않았는데.”

그랬는데.”

블랭크가 불가피한 사유로 해체된 뒤에는 UPIO로 이동했다. 원래 우리는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자들이었어. 어디에서도 뒤처지지 않았다. 우리가 없으면 세계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다들 알았어.”

…….”

이후 켄드릭 녀석을 다시 만났는데, 그 녀석이 그러더군. 최근에 협력하게 된 부서에서 동기 하나를 마주쳤었다, 그런데 바로 며칠 뒤에 부고 소식을 들었다. 너무 무섭다고 적힌 메모만 하나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더라.”

앨빈 씨가 전에 하셨던 말씀과 비슷하네요.”

내가?”

. 첫 회기에서 같은 말씀을 하셨죠.”

그래, 그랬지.”

 

앨빈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처음 켄드릭에게서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그 놈은 이상한 소리를 했거든.”

뭐라고 했나요?”

이 사회에서 조금만 이상한, 평범한 사람인 척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의 공포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고. 우습게 들리는 말이지 않나?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능했어. 아무리 노력해도 무능해질 수 없어서 공포를 느낀다고.”

 

앨빈이 실소를 흘렸습니다. 보통 상담실에서 웃는 일이 많지 않은 그의 웃음에서 즐거운 기색이라고는 읽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는 건가요?”

 

앨빈의 웃음은 그 질문을 들은 뒤 천천히 사그라들었습니다. 침묵은 때로 긍정이 되지요. 저는 말을 이었습니다.

 

인간 외 생물의 메타포에 대해선 들어 본 적 있어요.”

 

작품에서 말입니다, 흔히 사람이 아닌 것으로 표방되는 지성체들이 재앙 혹은 소수자의 은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아십니까? 두 가지가 동시에 들어가는 경우도 잦지요. 보통의 사람들에게 예외의 존재들이란 항상 두렵고 쫓아 죽여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다수에게는 꼭 불가해의 재해처럼 보이는 그것들은 보통 들여다보면 아주 평범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괴물로 보일 따름이지요.

 

그렇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이 를 두고 이상한 것이라고 지칭하고, 내가 극히 퀴어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나와 닮은 자가 극히 적은 세계에서는 타인보다는 자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통상적인 인간의 상과 자신이 지나치게 다르다면 아무래도 자신을 의심하는 게 상식적인 사고겠지요. 실은 진짜 괴물들은 사람의 가죽을 쓰고 있고, 자신은 사람의 가죽을 쓴 인간이라고 해도 개인은 그런 식으로 천천히 미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은 현실에서 괴물의 탈을 쓸 것을 강요당합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들어간 매체 또한 현실에서 돌이나 맞는 것이 흔해요. 그러니 괴물들은 지면에서도 보통 괴물로 표현되지요. 여자의 얼굴을 한 재앙, 다른 세계에서 온 것, 인간 아닌 생물, 사람과 비슷한 무언가. 아주 직설적인 비유입니다만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그려낸 이야기에는 또 쉽게 속아 넘어가니까요. 저는 아마도 그때 앨빈 씨에게 그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대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었으면 이런 일로 괴롭지 않아도 됐을 텐데요.”

무슨 뜻이지?”

앨빈 씨의 문제는 앨빈 씨가 아니라 사회의 형태가 잘못되어서 생겨난 거라고요.”

 

클로드라는 분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딱 다음 주의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MTI 소속이라고 운을 뗀 그는 앨빈이 아마 몇 주 정도는 상담을 쉬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장은 급해서 자신이 대리로 연락했다고 했는데, 이야기하는 투가 멋쩍으면서도 사근사근해 일부러 상담을 방해하려고 거짓말을 한 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본적으로 말씨가 부드럽고 사람과 소통하는 요령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앨빈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대조적으로요.'

 

혹시 무슨 일이 있나요?”

 

그래도 질문은 해야 했기 때문에 저는 물었습니다. 클로드라는 분을 수화기 너머에서 살짝 뜸을 들이다가 속닥거리는 투로 대답했습니다.

 

앨빈이 입원했거든요.”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건가요?”

말씀드리자면 복잡하지만이 정도는 괜찮겠지? 칼에 찔리는 사고가 있었어요.”

부상 회복을 위해서 입원을 한동안 오래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몇 주 쉬는 걸로 괜찮은 건가요?”

일단은 절대 안정이라고는 하지만 아마 몇 주 정도 지나면 다시 센터에 오려고 할 거예요.”

 

그는 음, 하고 침음하다가 조심스럽게 덧붙여 묻더군요.

 

거기에서는 잘하고 있나요?”

, 아주 성실하게 방문해 주시고 계십니다.”

기뻐요. 앨빈은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혹시 날카롭게 군다고 하더라도 상담사 님이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닐 거라는 거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저희는 몇 가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습니다. 클로드라는 분은 꽤 적정한 선을 잡으시는 실력이 탁월해서, 이후로는 앨빈에 관해서는 직접적으로 논의하지 않더군요. 내담자에게 전달되었을 때 빈축을 살 법한 소재는 아예 꺼내지 않기로 하고, 대신 전화를 받는 사람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끔 거리를 조정하는 화법이었습니다.

 

앨빈은 회기가 진행되는 동안 클로드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만, 나오는 이야기 덕분에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어요. 오히려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현재 상사나, 과거의 인연들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사람들은 오히려 꺼내 들었을 때 쉽게 망가질 것 같은 마음의 한 부분을 도통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망설이지 않습니까. 유독 서글픈 과거의 기억이라든가 실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현재의 관계 같은 것들.

 

이야기가 그렇게 나왔으니, 저는 일단 몇 주 정도는 앨빈 씨가 방문하지 않을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퇴원을 하게 되면 연락을 달라고 했던 참이었고, 아무래도 입원이 필요하긴 한 모양이니 한 달 정도는 앨빈 씨의 기존 상담 시간에 자료를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런 식으로 며칠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날 앨빈 씨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분과 나누었던 대화를 톺아보고 있었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냥 대화를 나눌 때는 잡아내지 못했던 요소들이 보이더군요. 마침 상처를 입어도 빠르게 돌아오는 능력에 대한 언급을 들여다보던 차에 바깥에서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군가가 올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바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런 식으로 인사를 하고 마주한 사람은 여전히 새까만 옷을 입고 비를 맞은 듯 새까맣게 빛나는 머리카락이 창백한 피부와 대조적인 어느 방문자였습니다. 그의 눈동자는 주변의 노란 전등 빛깔을 기이하게 머금어 그 동공 부근이 적색으로 형형했습니다. 다만 꼭 각이 잡혀 틈이 없을 것만 같았던 그 낯빛, 분명 그 낯빛만큼은 과거의 것과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앨빈 씨, 입원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저의 내담자는 문 앞에 황망하게 서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표정한 상태 그대로 앞을 응시했습니다만, 그것은 날카롭다기보다는 꼭 길을 잃은 것만 같은 기색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야 하는 방향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한 채로 도시를 헤매다가 그나마 향할 수 있었던 장소로 뛰어든 길짐승 같았다고나 할까요.

 

앨빈 씨는 그대로 우두커니 서 있다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의 어깨가 떨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그는 굳은 몸을 끌고 상담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만 자리에 앉지는 않았습니다. 걸음은 불안정했고 뒤이어 나오는 목소리 역시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공허했습니다.

 

본 프로그램 참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약속이 있었지.“

 

앉는 것조차 잊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저는 그를 진정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큰 쇼크에 빠져 있는 경우라면 일부러 찬물에 얼굴을 집어넣게 하거나 격렬한 운동 같은 것을 시키겠습니다만, 그 순간 쇼크에 빠진 사람과는 조금 달라 보였거든요. 더군다나 다쳤다는 사람에게 상담실에 오기가 무섭게 운동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저는 잘 쓰지 않던 상담실 카우치로 그를 부드럽게 밀었습니다.

 

잠시 누워서 이완 연습 먼저 해 볼까요? 급하게 오신 것 같으니까, 일단 심신을 안정시키는 것에서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아요.”

 

앨빈 씨는 처음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꼭 두려운 것을 바라보듯이 긴 소파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그 위에 앉았습니다. 저는 그가 눕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움직임이 유독 굼뜨고 느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앨빈 씨의 얼굴에 새하얀 전등의 빛이 떨어졌습니다. 반쯤 누우려던 사람의 동공이 수축하더니 그의 몸이 옆으로 돌아갔습니다.

저의 내담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으로 굴러떨어졌습니다. 그가 소파의 가장자리를 한 손으로 짚은 채 경련하는 것을 보며 저는 당황하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딘가의 상처가 잘못된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는 바닥을 짚고 있었어요. 상처가 터진 흔적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앨빈 씨는 그대로 헛구역질하면서 손톱으로 바닥을 긁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꼭 바람 소리와도 같이 불안정했습니다.

 

아니야. 나한텐 그딴 능력 같은 건 없어.“

앨빈 씨.“

 

그는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꼭 자신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 같았어요. 주변을 산발적으로 긁던 그가 근처의 휴지 박스를 집어던졌습니다. 그것은 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을 향해 날아가 퍽 소리와 함께 벽 앞에 떨어졌습니다.

 

실험은, 그만.“

앨빈 씨.“

꺼져!“

 

잠시 망설임은 있었습니다. 직접적인 피부의 접촉은 사실 상담에서 지향되는 바가 아니지요. 그러나 현실을 지각시킬 필요는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 어딘가에 갇혀 있었어요. 저는 그의 손등 위로 손을 짚었습니다. 차게 식은 근육이 수축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앨빈 씨. 숨 들이켜세요. 하나, , , .“

 

전반적인 경위를 듣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일 처리를 할 때 이전과는 다르게 느린 모습을 보여주었던가요. 다치게 되었을 때도 분명 예전이었더라면 대응할 수 있는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도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었지만 수속을 서둘러 밟고 나왔다더군요. 그는 분명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 사유가 상담실의 본질적인 방문 사유와도 연관되어 있으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타인과 다르다는 것에 대해 번뇌하였지요. 기이한 것들,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들은 곧잘 대상이 되고, 해체되고, 분해됩니다. 그래요, 그가 후천적 이능력자일 것임을 짐작하고는 있었어요. 하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정말로 그의 안을 들여다보아도 괜찮은 걸까요? 짧은 회기만으로 봉합할 수 없는 상처를 뜯어서 잘못 붙인 뼈를 부러뜨려 치료하려고 하는 건 아닐지요.

 

그래서 여쭙고 싶습니다. 그가 보이는 고통을 일시적으로 경감시키는 것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지요? 상대와 상담사와 내담자로서 만나는 것이 고작이지 않습니까. 현재를 바꿔 줄 수 없는데도 저라는 한 명의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저는 이능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를 위한 무리를 만들어 줄 수도 없고, 고독을 제거해 줄 수가 없는데. 하나의 인간이 다른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아주 깊은 슬픔과 애정 외의 것이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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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적 마법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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