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깨찰빵 (봄봄, @Fallmoon_full)

타입: 단편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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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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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하네에.”

 

윗목에 책상다리로 앉아 턱을 괸 보라색 머리카락의 신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앞에 앉아 있던, 높게 잡아 봐야 일곱 살 정도나 되었을 법한 검은 머리의 신은 오동통한 손으로 가죽 주머니를 붙잡았다. 주머니 안에서 흡사 생쥐처럼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은 한때 사당 주인의 직장 동료였던 인간이었다. 어린 시절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현신’, 여려니와 작아질 이유가 없는 인간, 미로가 둘 다 축소된 상황은 일단 예상 밖의 사고였다.

 

둘 다 비슷한 처지였음에도 사당의 주인, ‘아세의 두 손님이 취하는 반응은 제법 대조적이었다. 검은 머리카락과 잿빛 홍채의 예닐곱 살 소년은 신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고, 긴 청록색 머리칼과 노란 눈동자를 한 난쟁이 인간은 그에게 기운을 뺏긴 듯이 시들시들했다. 만일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쥐구멍으로 도망치기라도 했을 기세였다. 아세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나름 위로랍시고 한 마디를 건넸다.

 

뭐어, 그래도 해결책을 알긴 하는 게 어디야아. 둘 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했으며언, 완전 큰일이었을 거 아냐아.”

안 달래 줘도 괜찮으니-이대로 두렴.”

 

대꾸하는 미로를 내려다보던 여려니가 불쑥 주머니를 들어올렸다.

 

녹고 있잖아, 더 작아지면 안 돼!”

 

사건이 발생한 것은 초겨울의 일이었다. 고대 문명의 흔적으로 남은 신의 파편에 대고 기원하면 불완전한 신이 만들어지던 세계. 인간들은 오랫동안 기원하였고 현신이라고 불리는 신은 욕망을 먹이로 연명했다. 세태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이제 기원이 없어도 신은 죽지 않았으며, 인간은 가장 완벽한 신같은 것은 제작할 수 없었다. 세상은 바뀌고 있었으나 아세의 사당은 주류 문명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변화에 무뎠다. 손님이 방문하면 으레 그 시점이 외부의 소식을 알 수 있는 시점이었다.

 

편지가 있었기에 미로와 여려니의 방문 계획은 며칠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차였다. 둥그렇게 세운 돌담 중앙 나무 대문이 열리자 아세는 사랑채 문을 슬쩍 열었다. 디귿 자 모양으로 세운 건물 중심부를 향해 걸어오는 한 쌍의 인영이 있었다. 호리호리하고 기력 없어 보이는 양록색 장발의 청년. 그리고 그보다 분명 오래 살았을 텐데도 실제로는 어려 보이는, 키가 조금 더 작고 차림이 거무튀튀한 기생의 신. 아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이 추웠기 때문에 그 이상의 손님맞이를 하러 나갈 계획은 없었다.

 

어서 와아.”

눈이 갑자기 와서-길 찾느라 혼났단다.”

내가 있잖아, 괜찮았지.”

 

여려니가 뽐내는 오골계 병아리처럼 성큼성큼 걸어왔다. 미로는 그가 꼭 딛은 곳만을 밟으면서 따라왔는데, 덕분에 툇마루까지 온 여려니의 바짓단은 미로의 것보다 훨씬 더 축축해져 있었다. 아세는 문을 슬쩍 더 열더니 안쪽에 있는 쪽문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불에 앉으면 안 돼애. 아랫목에 앉아 있어이.”

 

아세가 아궁이 쪽으로 사라진 사이 여려니와 미로는 반절 열린 문을 통해 뜰을 구경했다. 사당은 국가 남부의 만경이라는 지역에 자리했다. 끝자락은 바다와 이어져 있다지만 아세가 택한 위치는 그보다 북쪽이라, 머무는 곳에서는 파도 대신 겨울바람이 속살거렸다. 돌담 아래에는 앙상한 꽃나무들이 자리했고 눈 덮인 처마 밑으로는 풍경이 딸랑댔다. 열린 문틈을 타고 찬바람이 든다는 점을 제하면 실내는 봄처럼 따뜻했기에 미로는 아닌 척 느리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부엌 방향의 쪽문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여려니가 미로의 소매를 꼭 잡았다.

 

미로야.”

왜 그러니?”

지금이다. 더 늦었다간 쟤가 들어오겠어!”

 

미로는 모른 척 앞만 바라보다가 입을 가렸다.

 

불 때면 들어올 테니-좀 더 두고 보는 게-어떻겠니?”

사당 주인이야, 틀림없이 계속 있을 거다?”

 

미로는 눈을 끔벅거리다가 검지와 중지를 들어 여려니의 이마를 꾹 밀었다. 그의 연인은 당연하게도 거의 밀려나지 않았으나, 미로는 적당히 그러려니 하면서 도로 자리에 누워 버렸다. 여려니는 와상 조각처럼 변해 버린 미로의 얼굴 방향으로 냅다 낯을 쭉 들이밀었다.

 

눈 감아, 어서!”

 

미로는 곤란하게 부엌 방향을 넘겨다보았다. 고구마라도 찌는지 문 틈새로 흐릿하게 단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눈을 꾹 감았고, 여려니가 그대로 입을 맞췄다. 입술이 벌어지고 살이 틈을 가르며 미끄러졌다. 여려니는 그렇게 달라붙을 때면 꼭 아기 원숭이처럼 구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딱히 다를 것은 없었다. 미로가 입을 다물 듯이 오므리며 들어온 혀 아래를 뭉근하니 문지르자 그의 연인은 장난치는 것처럼 혓바닥 위를 쭉 핥아 올렸다. 미로가 한 박자 늦게 움찔했다.

 

…….”

?”

 

미로가 실눈을 뜨자 여려니는 되려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되묻듯이 소리를 냈다. 그 와중에도 입천장 가장자리를 문지르는 움직임에 미로는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혀로 상대의 것을 슬쩍 밀었다. 여려니는 일단 떨어졌으나, 곧바로 입을 포개며 쪽쪽쪽 가벼운 입맞춤을 얹었다. 그가 다시 물었다.

 

?”

연아. 입 맞추면서-자꾸-말하지 말렴.”

알겠어, 다시 해 본다.”

 

미로는 맥없는 얼굴로 다시 또 부엌 방향을 건너다보았다. 문 너머에서 뭔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일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도로 눈을 감았다.

 

…….”

 

나라를 뒤흔들던 부패 황제가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이래 두어 해가 지난 시점이었다. 권력자의 죽음과 현신의 특성 변화는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었기에 나라는 여러모로 복잡했다. 황제의 아들은 아직 어렸고 그를 몰아내려 궁으로 몰려갔던 사람들은 딱히 적통 황자를 황제로 옹립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연히 황제의 누이가 그대로 자리를 물려받았다. 아세, 여려니, 미로가 아는 사람들도 지금 그 아래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으나 정치는 그들 셋의 몫이 아니었다. 발을 들였다가 이제는 손을 뗐으니까.

 

궐내 기구에서 처음 만났던 세 사람은 변화하는 국가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재차 자리를 잡았다. 아세는 강변 마을에 다른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사당을 세웠다. 그는 여려니와 미로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사당에 어린이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거짓의 신이었으나, 거짓은 사기의 영역에 머물 수도 있고 환상의 영역에 머물 수도 있어 후자의 방식으로 활용할 여지가 충분했던 것이다.

 

반면 여려니와 미로는 세상을 방랑하며 여행을 이어 가고 있었다. 시시콜콜한 정보를 적어 보낸 아세와는 달리, 그들은 자신들이 언젠가부터 사귀기 시작했다는 사실조차 알려 준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것까지 알려 줄 정도로 서신이 많이 오가지 못했던 탓도 있긴 했다. 끊임없이 머무는 위치가 변하는 두 사람이 다른 이들과 연락을 이어 나가는 것이 아주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보다 주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입을 계속 맞추려는데 조용하던 툇마루 너머에서 무언가 나동그라지는 소음이 일었다. 미로는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속도로 여려니의 이마를 밀었다. 으벱 소리와 함께 어리숙한 연인이 떨어지는 순간 아세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들고 있던 소쿠리를 내려놓더니 창호지 바른 문을 열어젖혔다. 그 사이 미로는 약간 젖어 보이는 여려니의 입에 고구마를 밀어넣었고 손등으로는 자기 입을 문질렀다. 다행히 미로가 사귀는 대상은 인간이 아니었기에 겨우 고구마로 회복 불능의 화상을 입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

 

뭐야앗. 누가 어디서 떨어진 거야앗.”

 

아세가 문 밖에 대고 항의하자 집의 사각지대 방향에서 쭈뼛거리는 어린이 서넛이 나타났다. 천을 잔뜩 덧대고 약간 못생긴 누비옷을 입은 것이 딱 봐도 마을의 보통 아이들이었다. 나이는 제일 의젓해 보이는 편이 열둘 언저리인 것으로 보였다. 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그들은 먼저 말하라는 듯 서로의 옆구리를 찌르다가 결국 얌전하게 다가왔다.

 

현신니임. 뭐 물어볼 거 있는데요오.”

 

아세는 아이들의 옷을 털어 주고 신발을 확실하게 벗긴 다음에 하나씩 미로와 여려니 곁으로 밀어넣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손님맞이를 위한 방이라는 것이 굉장히 많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딱히 아닌 탓이었다. 꼬마 방문객들은 낯선 사람의 존재에 조금 당황한 것 같았으나 이내 고구마 소쿠리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앉았다. 꼬마 하나가 물었다.

 

여기 계신 분들도 현신이에요?”

나야, 현신이지. 여기는 인간이다.”

 

여려니가 가슴털을 부풀리는 강아지처럼 허리를 당당하게 펴고 소개했다. ‘여기는 인간이다라는 평을 받으며 차례를 넘겨받은 미로는 전에 없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느리게 일어나 앉았다.

 

거짓의 신에게-물어볼 게 있는 것 같던데-우리도 도울 수 있다면 좋겠구나.”

 

꼬마가 우물쭈물하며 뭔가를 말하려 하자 아세가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대화를 막았다.

 

잠시마안. 아까 깨지는 소리 나던데 혹시 장독대 깨지 않았냐잇.”

안 깼어요!”

장작은 넘어뜨렸어요오.”

알겠어이. 그럼 장작 보고 온다아.”

 

아세가 여려니와 미로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나가자 실내에서는 잠시간 침묵이 감돌았다. 아이들은 어째 중간에 있는 꼬마에게 계속 눈치를 주고 있었다. 예의 소녀는 괜히 혀로 입술을 축이다가 냅다 미로를 보면서 질문했다.

 

두 분은 현신과 인간이시죠?”

맞단다.”

혹시 어떤 관계신가요?”

보기에는 어때?”

 

여려니가 냅다 끼어들었다. 미로는 조용히 그를 한 뼘 옆으로 밀었다. 미끄러운 바닥에서 몸 전체를 미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려니는 잠깐 멈췄다가 미로 곁에 도로 딱 달라붙었다. 어린이는 미로와 여려니 앞에 떡 두 덩이를 내려놓았다. 여려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무어야?”

공물이에요.”

네가 먹어도-괜찮단다.”

오빠가 사당에서 부탁하려면 공물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요청하는 얼굴이 정말 진지해 보였으므로, 미로는 일단 고맙단다, 하는 인사 후 음식을 집어 들었다. 물론 그가 먹기 전에 여려니가 먼저 기미 상궁의 역을 맡았다. 연인이 떡을 입에 쏙 집어넣고 오물거리는 것을 보던 미로가 음식을 베어 물었다. 좋은 곡물로 빚은 것 같은 쌀떡은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아이는 쭈뼛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럼 저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무어니?”

 

질문자는 갑자기 주섬주섬 무릎을 꿇고 앉더니, 주먹을 허벅지에 올리고 제법 비장한 표정을 한 채 질문을 던졌다.

 

현신과 인간이 혼인할 수 있나요?”

 

숨 막히는 침묵이 일었다. 여려니는 답하는 대신 미로의 곁에서 제법 부담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의 인간 연인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으나 답이 늦는다는 것 자체가 고뇌를 반증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온통 쏠린 와중에 미로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현신과-혼례를 올리고 싶으니?”

 

아이의 얼굴이 거의 터지는 것처럼 붉어졌다. 동시에 곁에서 술렁거림이 일었다. 또래의 시선이 몰린 가운데 질문자가 손을 휘저었다.

 

아니, 아니, , 그런 건 아니고요!”

혼례는 아무래도-어렵겠구나.”

 

횡설수설 대답하려던 아이의 움직임이 그대로 딱 멎었다. 미로는 느릿하게, 그러나 여전히 다정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현신에게-혼례의 개념을 이해시키는-것부터 어려울 거란다.”

하지만 오빠는 나한테.”

그네들이 인간과 인간의-부부 관계를 이해한다 한들, 현신과 인간의-관계까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무엇보다 현신은 우리보다-훨씬 많이, 오래 살아가지 않니. 백 년도 안 되는 삶에-얽매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구나.”

 

아이의 얼굴이 점차 창백해지는 동안, 미로를 계속 바라보던 여려니가 퍽 가볍게 말을 꺼냈다.

 

"현신이 인간을 기르다 잡아먹는 거 알아, ?“

?“

닭은 달걀을 먹으려고 기르고, 돼지는 고기를 취하려고 기른다. , 생각해 봐라. 그렇다면 현신이 인간을 기르는 이유는 뭐겠어?“

 

다음 순간, 무릎을 꿇고 있던 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소녀는 붉어지고 그렁그렁한 눈을 한 채 앉아 있던 두 어른들을 쏘아보다가 냅다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다.

 

미워어어!”

, , 어디 가?”

죄송, 죄송해요. !”

 

신발까지 야무지게 신고 쏜살같이 사라져 버린 소녀를 그의 친구들이 허둥지둥 쫓아 나갔다. 마침 장작을 정리하면서 돌아오던 아세는 대문 밖으로 사라지는 아이들을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응시했다.

 

, 뭐얏. 무슨 일이야아.”

 

그는 덩그러니 남겨진 미로와 여려니를 바라보며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상황 파악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다시 처음처럼 셋이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아세는 이해했다는 눈초리로 끄덕거리다가 턱을 문질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정리되지 않는 사람 특유의 애매한 입 달싹거림이 있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의문을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근데에. 너희 사귀는 거 아냐아?”

 

미로는 대답하려는 여려니의 입에 고구마를 물리고 질문하는 입에도 집어넣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옛 동료의 느릿한 손놀림에 당할 아세가 아니었다. 그는 흡사 춤추는 방울뱀처럼 미로의 손길을 피해 휙휙 몸을 움직이면서 계속 물었다.

 

아까 나올 때 보니까 뽀뽀하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에.”

뽀뽀가-뭐니?”

아무리 내가 연애라는 걸 해 본 적 없어도 그렇지 보고 배운 것도 없는 줄 알앗. 인간들은 원래 서로 좋으면 입술을 비비잖아이.”

 

여려니의 입꼬리는 고구마를 문 사람이 올릴 수 있는 최대치 수준으로 올라가 있었다. 미로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대로 창호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뒤에 닫았다. 짧은 정적 후 아세와 여려니가 일어나서 문짝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어디 가는 건데에.”

혼자-있을 거란다.”

이제는 아주 나를 헌신짝처럼 두고 가려고?”

조용히-하렴.”

내 창호문 부서지면 안 돼애. 놔 줘어.”

 

기름 바른 문틀이 협공에 덜컹거렸다. 다음 순간 미로의 인영이 약간 흔들리더니, 펑 소리와 함께 찬바람이 불어닥쳤다. 열린 문 바깥에는 말 그대로 조막만 해진 미로가 인형처럼 앉아 있었고, 방 안에는 찾아온 어린이들보다도 더 어려 보이는 여려니가 문짝을 쥔 채 서 있었다. 아세는 어리둥절한 낯이 되었다가 짧게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너희이. 혹시 아까 무슨 떡 먹지 않았어이?”

 

그러니까, 작금의 사태에 이른 경위는 대강 이러했다. 미로와 여려니에게 질문을 하러 온 꼬마는 아세가 아는 아이였다. 지역 유지의 딸임에도 신분을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던가. 그 꼬마가 꼭 며칠 전에 거짓말 탐지기 기능이 있는 떡을 만들고 싶다면서, 다른 현신의 도움을 받아 쪄낸 특이한 떡을 내밀었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아세는 진실이 아닌 거짓의 현신이었고, 누구한테 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던데다가, 너무 위험한 탐지기는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아 아주 가벼운 효과만 넣어 줬던 참이었다.

 

그게-가벼운 효과니?”

 

해결책까지 들은 미로가 물었다. 아마 그가 평소의 크기였다면 누군가의 이마에 딱밤을 때리기라도 했을 게 분명했다. 반면 여려니는 어쩐지 신나 보이는 얼굴이었다.

 

사랑을 담아서 입을 맞추면 된다, 그런 것이지?”

. 뭐어, 떡을 준 그 애가 풀어 줘도 되는 저주긴 한데에. 자기 집안 현신을 짝사랑하는 여자애한테 그런 얘기를 했으니 걔가 앞으로 며칠간 사당에 올 리가 없잖아이.”

 

미로는 일전에 미워! 하고 외치며 뛰쳐나간 어린이처럼 미묘한 죽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이 워낙 작고 원래 표정이 그렇게까지 뚜렷한 부류가 아니었기에 아세는 그 사실을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거의. 그는 모른 척을 하면서 여려니에게 물었다.

 

근데 그럼 누가 고백한 거야아?”

당연히 나지! 저 속 좁고 옹졸하고 느려터진 애가 했을 거라 생각해? , 쟤랑 몇 년을 나보다 더 같이 지지고 볶고 일했으면서 그걸 몰라?”

것도 그렇다아. 입술끼리 부딪히기만 해도 돼애.”

아세, 너는-벽 보고 있으면 어떻겠니?”

 

아세는 눈썹을 올렸다가 몸을 돌리고 앉았다. 계속 쳐다보고 싶은 짓궂은 마음도 일었지만 현신을 도구라고 칭하지 않는 옛 동료의 말투 변화가 썩 마음에 들었던 덕이었다. 곁에서 짧고 분명한 쪽 소리가 났다. 아세는 짐짓 양손을 맞부딪혔다.

 

자아, 해결됐으니 그만이지이. 그래서 말야아. 현신이랑 인간이 혼례를 못 올린다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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