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깨찰빵 (봄봄, @Fallmoon_full)

타입: 키스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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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붙기 전부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공포는 아닐 것이었다. 불씨가 크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주인님이 곁에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귀 끝이 내려갔다.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던 허슈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면서 곁을 돌아보더니, 다시 밭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람들이 횃불을 들자 긴 그림자가 죽은 초목 위로 드리워졌다. 지역의 자작이 허슈에게 설명했다.

 

"마침 좋을 때 나와 주셨습니다. 밭에 있는 해충의 알이나 유충을 태우기 위해 농지에 불을 붙이는 중입니다. 풍년도 기원할 수 있죠.“

 

일하는 모습을 소백작에게 보여줄 수 있어 제법 뿌듯한 기색이었다. 마론의 꼬리가 느리게 부풀었다. 허슈가 말했다.

 

"좋은 기원 방식입니다."

"마저 보고 가시겠습니까?"

"오래 탈 것 같으니 쉴 만한 곳에 들어가 구경할까 합니다."

"들판이 보일 만한 곳이라면 이 근방에선 평민들 여관 정도입니다만."

"평민의 생활을 잠시 경험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것도 그렇군요. 그럼 이쪽으로.“

 

봄을 목전에 둔 계절은 살을 엘 듯이 서늘했다. 허슈가 주변 영지를 돌아보고 다른 귀족들과 교제할 필요가 있었던 탓에 그들은 근방 자작의 관장 지역까지 나온 참이었다. 눈이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만 둘러봐도 흰 둔덕이 수북했다. 으레 들불이 쉽게 이는 계절은 봄이었다. 겨울에 이런 종류의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은 당연히 예상 밖의 사건이었다.

 

사람들이 불을 붙였다. 들불이 그리 빠르게 번지지 않는데도 마론의 뺨에 열기가 올라왔다. 죽은 풀로 뒤덮인 밭은 이미 폐허와도 같은 잿빛이었고 지나치게 넓었다. 기다리는 말들이 콧김을 내뿜었다. 목소리가 먼 곳에서 울렸다. 두어 걸음 앞에 선 허슈가 몸으로 시야를 가린 채 손을 내밀었다. 마론의 눈에 초점이 들어왔다. 그의 주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렀다.

 

"자아, 마론, 이리 온.“

 

어째서 그 목소리는 그렇게도 다정한지. 버팀목이 되기에는 이렇게 정신이 나약할 때 그의 허슈는 왜 그리도 온전한 것인지’. 그럴 수는 없었다. 같은 것을 알아차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론은 손을 잡았다. 제대로 된 집사 노릇을 해야 했다. 할 수 있었다. 그는 허슈를 마차로 인도해 들인 뒤 바로 맞은편에 앉았다. 문이 닫히자마자 풍성한 꼬리가 허리에 감기듯이 말렸다.

 

사용인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분명 알고 있었다. 밭이 불타오르며 화염의 빛이 마차 안까지 들이쳤다. 마부가 고삐를 쥐었다. 달리는 바퀴가 새하얀 길에 한 쌍의 평행선을 그렸다. 마론은 밖을 보지 않았다. 허슈를 인도해 들인 이후로도 놓지 못한 손이 가늘게 떨렸다. 소백작은 마차의 창을 닫고 잡은 것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여기. 곁에 앉아도 좋아.“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른 채 마론은 아이처럼 불렀다.

 

주인님.“

 

허슈는 답하는 대신 팔을 벌렸다. 마론은 곧바로 그를 끌어안았다.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면 옷깃에서는 뚜렷한 라벤더 향이 났다. 기분이 나빴다. 먼 곳에서는 재의 냄새, 가까운 곳에서는 도저히 지워버릴 수 없는 꽃의 내음. 참을 수가 없었다. 무언가가 끓어오르다가 겨울 공기에 부딪히며 짓눌렸다. 맥박이 내달렸다. 내려간 한 쌍의 귀가 떨리며 주인의 뺨을 스쳤다.

 

주인님.“

 

허슈의 옷은 섬세한 금실로 장식되어 있었고 의복은 녹아내리는 눈송이처럼 부드러웠다. 아름다움 자체를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만의 신을 곁에 둔 신자라면 마땅히 숭상하는 자를 믿고 따라야 할 터인데. 화염이 겨울의 끝을 향해 내달리는 거대한 업화와 같이 일어났다. 그것을 등지고 달리는 마차에서 마론은 허슈의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닿아 있는데도 잃어버릴 것 같았다.

 

소백작을 원하는 자들이 지나치게 여럿이었다. 남들이 볼 줄 아는 것이 겉껍데기뿐이라고 해도 그랬다. 꽃내음이 코끝을 짙게 스치자 진정으로 공포에 가까운 감정이 치밀었다. 사람이 놓은 불길이 곧 온 밭을 덮을 것이었다. 곤충의 몸이 산 채로 익고 둥지가 녹아내리는 동안 그것은 한참을 타오르며 살아 있는 존재를 남기지 않으리라. 허슈가 사용인의 등에 부드럽게 팔을 감았다.

 

마론, 여기 봐.“

 

마차가 흔들렸다. 마론이 고개를 들었다. 벌어진 입술이 그의 것에 가까워졌다. 절대 닿지는 않고 오직 초대에 응하기를 기다리듯이. 솜털을 스치는 숨이 온난했다. 사람의 얼굴을 한 신이 전하는 무언의 요구에 신자는 복종했다. 마론의 혀가 틈새로 미끄러져 입천장을 짓이겼다. 그것은 갈구였다. 허슈의 팔이 그의 목에 감기며 무게중심이 변화했다. 사용인의 손이 기대 오는 주인의 허리를 받쳤다.

 

온기 어린 겨울, 주인을 만난 초겨울. 그대로 되감아 늦가을과 잊을 수 없는 여름을 스치고, 아카데미에 입학한 봄을 지나 그 귀족의 손을 잡기 이전, 더 먼 과거를 되짚어 보자면화재와 함께 마론에게서 사라진 것은 핍박자뿐만이 아니었다. 불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허슈는 당장 그가 쥔 모든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랑스럽되 연약하고 외로운 신이 모든 죄를 사해 주려 한들 근원에 자리한 두려움이 사라질 수는 없었다.

 

안으로 들어간 살이 목구멍 근처의 여린 점막을 쑤셨다. 맞닿은 몸에서 신음이 샜다. 마론은 집요하게 깊고 내밀한 부위를 헤집다가 내부를 훑어 올렸다. 허슈가 가는 떨림과 함께 느릿하게 그의 움직임을 받아냈다. 그가 빨아들일 때마다 깊은 곳에서 물소리가 일었다. 단단해진 혀에 입 안 점막이 달라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흘러든 타액이 목구멍으로 넘쳐 들어가자 아래에서부터 컥컥거리는 신음이 샜다. 마론은 상대의 뺨을 잡고 부드럽게 애무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포개지는 입술 탓에 혀가 더 내밀한 부위까지 미끄러져 들어갔다.

 

젖은 소리가 귀 안에서 선명했다. 한 손으로는 목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뺨을 쥔 사용인은 주인을 욕망했다. 부족했다. 놓칠 것 같았다. 입술 사이로 액체가 흘러 허슈의 턱이 젖었다. 그의 떨리던 눈가가 느릿하게 감길 즈음 가슴에서부터 올라오는 열기가 육신 사이 공간을 채웠다. 달아오른 얼굴의 허슈가 목을 감은 팔에 힘을 주자 손가락이 머리카락 아래 숨겨진 목덜미를 헤집었다. 찌르는 것 같기도 했고 그러쥐는 것 같기도 했다. 눌린 옷이 바스락거렸다.

 

으응.“

 

마차가 번화가로 접어들며 밖에서부터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맥박 소리가 커졌다. 어떤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또, 애초에 그들의 관계에 있어 주인의 것과 사용인의 것을 구분하는 행태는 무의하지 않았던가? 허슈의 목 안에서 웅얼거리는 침음이 가늘게 샜다. 마론은 상대의 풀린 눈을 응시하며 치열을 따라 마찰하고 혀 아래를 들쑤시듯 건드렸다. 배덕감이 일었다. 은밀한 자리를 찔린 상대가 바르르 떨었다가 몸을 더 기울였다.

 

허슈는 꼭 이런 순간이면 소백작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마론의 주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더 달가운 사람처럼 굴었다. 그리고 아마 그 몸짓에 거짓은 없을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테니까. 적어도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마차의 속도가 느려졌다. 입술이 떨어지며 맑은 액이 사이로 흘러내렸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마론은 손수건을 꺼내 허슈의 얼굴을 닦아 주고는 고개를 숙였다. 시선을 떼지 않은 채였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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